야설 야동

수요일의 아이 - 2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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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어둠은 내리고







내가 아빠와 재회하고 있을 때 수현씨는 어딘가를 다녀온다고 나갔다. 그리고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은 붉은 해가 서쪽에 걸린 때였다. 지는 노을 빛과 붉은 구름이 저수지 수면에 반사되어 그림을 그렸다. 마당 한쪽에 세워진 흔들 의자에 앉아 그와 나는 오늘의 태양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딜 다녀오신 거에요 ”

“기무사측과 협의를 좀 했습니다. 또 오랜만에 이사장님과 이실장님도 뵙고 왔구요.”

“아, 그 분들 잘 계시죠 ”

“네. 휴업 중이긴 하지만 <Evergreen>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고 하시더군요.”

“<Evergreen>이 다시 문을 열 수 있을까요 ”

“글쎄요……”



그곳이 다시 과거의 평화로운 곳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길로 흩어졌고 그 길의 방향이 너무도 달라 다시는 한 점으로 모일 수 없는 깨어진 유리 조각과 같았다.



상념에 빠져있을 때 그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총이었다.



“이거 받아둬요.”

“이걸 왜 ”

“설명부터 들어요. 예전 내가 군에서 쓰던 겁니다. 잘 봐요. 이건 9mm 탄환을 써요. 이 클립에는 15발이 들어가죠. 전에 내가 이야기 했죠  1:1의 사격을 할 때는 반드시 한 번에 두 발씩 쏘도록 해요. 첫 발에 상대가 치명상을 입지 않았을 때 곧 반격할 수 있으니 그 기회를 주지 말고. 총알이 남아있다고 다 쏘고 클립을 바꾸려 하지 말아요. 적이 많다면 적당한 때에 클립을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여분의 클립도 주머니 안에 꼭 넣어서 다니세요.”



그가 클립이 삽입된 총과 여분의 클립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그가 준 총을 내려다 봤다. 공연스레 마음이 울적해지고 있었다. 조금은 목이 메인 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이 총은…… 이름이 뭐에요 ”

“USP Tactical.”

“앞에 있는 HK는요 ”

“헤클러 코흐.”

“독일에서 만든 총이군요.”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나도 독일어 좀 해요.”



그가 웃었다.



“압니다.”

“어떻게…… 알았어요 ”

“처음 우리가 만나서 내가 이실장에게 독일어로 물었을 때, 이실장도 당신도 알아들었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그랬군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이렇게 가슴에 파고드는 슬픈 예감에 대해서. 그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당신 이름은…… 뭐에요 ”



노을이 어둠을 끌어 내리는 듯 그의 얼굴이 희미해져 갔다.



“나는…… 김수현입니다.”

“나는요 ”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죠. 한유리라고 하는……”



그와 내가 마주 보고 웃었다. 마음처럼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어둠이 점차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을 지워 나갔다.







“오빠! 이제 제발 그만 좀 해! 보면 몰라  내 몸뚱아리는 창녀나 다름 없다고! 이놈 저놈 쑤셔대는 창녀 말야! 응 ”

“난 그런 거 상관 안 해. 내게 넌 그냥 사랑하는 사람일 뿐이야!”

“이런, 미련 곰탱이! 도무지 머리에 돌밖에 안 들어가지고…… 그래가지고 세상을 어떻게 살래  정신 좀 차리라고, 이 바보 곰탱아!”



문을 들어서려다 말고 그들의 언쟁에 잠시 망설여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의 관계. 하긴 미희가 과거 군에 있었다니 아마 그 때부터 두 사람은 아는 사이였는지도 모른 일이었다. 조금은 미련한 듯 우직해 보이는 최중사가 미희와 감정적으로 얽혀 있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남녀 사이는 알기 어려운 것인가 보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이 나에겐 무척 소중했다. 그들의 감정 문제는 조금은 천천히 해결해도 될 테니.



“미희야!”

“유리 ”

“몸은 좀 괜찮아 ”



그녀의 표정이 심드렁했다. 어쩌면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예전의 당찬 모습으로 곧 돌아왔다. 비록 얼굴은 상처투성이였지만.



“이 정도야, 뭐.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온 거야 ”

“안녕하세요, 최중사님.”

“네…… 유리씨. 어서 오세요.”



인사하는 최중사의 얼굴이 어둡기만 했다.



“여자들끼리 이야기 하게 오빤 그만 좀 나가주라.”

“어  어. 그럼 이따가 올게. 유리씨 말씀 나누세요.”

“네……”



보기 드물게 축 처진 최중사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파. 쓸데 없는 수식어는 빼고 꼭 필요한 말만 하자. 듣고 싶은 말이 뭐야 ”



그녀다웠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좋아. 그럼. 간단하게 말할게. 내가 여기 온 이유의 첫째는 너가 보고 싶어서. 둘째는 ‘미래창조협의회’에 대해서 아는 대로 이야기 해주면 고맙겠어.”

“첫째에 대한 것은 고마워. 둘째는 미안하지만 아는 바가 없어. 들은 바도 없고.”

“그래…… 알았어. 몸조리 잘해. 그만 갈게.”



웃으며 몸을 일으켜 돌아서는 순간



“그런데 내가 들은 것 중에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었어.”



그녀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리자



“지들끼리 하는 말이 교환이 정말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또 하나는 자기들이 가져온 거면 히로시마 것의 10개는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하더군.”



앞에 말 보다 뒤에 말이 나를 더 놀라게 했다.



“프, 플루토늄 ”



그녀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맙소사!’



너무도 놀라 병실 앞 의자에 앉아 나를 진정시켜야 했다. 지금까지 내가 알게 된 퍼즐 조각을 맞춰본다면 그 내용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미래창조협의회’는 북측으로부터 핵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받고 그들에게 ICBM기술이나 기술을 갖고 있는 아버지를 넘겨주려는 것이라는 결론이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그것이 이 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결국 남북이 모두 핵으로 무장해서 그것으로 차라리 힘의 균형을 유지하자는 막장승부의 위험한 줄타기가 아닌가. 도무지 내가 추론하는 그 내용이 나도 믿기지 않아 절로 고개를 흔들었다.



“유리씨!”



멍한 표정으로 나를 부르는 최중사를 바라봤다. 그는 이미 나를 여러 번 불렀던 모양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길래 그렇게 불러도 못 알아들으세요 ”

“그러셨어요  무슨 일로 ”

“조실장님이 찾으세요.”







그의 표정이 평온해 보였다. 침대 상단을 올려 창 밖을 바라보던 그의 얼굴이 다가선 나를 향해 밝게 웃었다.



“오랜만이군요.”

“네. 몸은 좀 어떠세요 ”

“괜찮아졌어요. 이제 말을 할 수 있으니 정말 좋군요. 하하……”

“그러게요. 처음엔 무척 걱정했는데……”



그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어쩌면 그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저를 보자고 하셨다고요 ”

“해줄 말이 있어서요. 후후……”

“네. 저도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앉으세요.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으니.”



침대 밑 의자를 당겨와 앉자 조실장의 시선이 다시 창 밖을 향했다.



“최중사와 신대리로부터 그간의 이야기는 전해 들었어요.”

“네……”

“제일 궁금한 것이 ‘미래창조협의회’에 대한 것이죠 ”

“네.”

“미안하지만 지금은 그것에 대한 것은 잊어버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그것은 시간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될 겁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말. 그러다 잠시 생각했다. 그가 그런 말을 할 때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내가 보자고 한 것은 다른 이유에요. 신대리, 아니 김수현에 대해서.”



그에 대한 것  무슨 말일까 



“네. 말씀하세요.”



그가 큰 숨을 쉬었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그렇게 그 여자는 죽었어요. 내가 손쓸 틈도 없이. 그 친구도 아니 이해하기 쉽게 지금의 Mother Goose도 무척 놀란 듯 하더군요. 그 아이는 죽은 엄마와 그 엄마를 죽인 사람을 보면서 석상처럼 굳어서 아무런 말을 못했죠. 한 참 후에 그 남자는 쏠 테면 쏘라는 식으로 등을 보이고 아이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어요. 물론 그 친구도 나도 모두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했고. 왜 그랬는지는 몰라요. 그냥 그 자리에서는 이념이고 적이고 그런 것보다 목숨을 걸고 사랑한 남녀와 어쩌다 실수로 사랑하는 여자를 죽인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자, 그들의 아픔을 목격한 나, 이렇게 벌거벗은 인간만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 이후에 우리는 그 남자가 다시 북으로 간 것과 아이를 서울 어느 고아원에 맡긴 것을 알았죠. 그 친구는 꽤 긴 시간을 괴로워하다가 결국 어느 날엔가 그 아이를 찾아가 데려와서는 양자로 삼더군요.”

“그 아이가 순순히 따라 간 건가요 ”

“그건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그 아이가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낸 것과 거의 말이 없었던 것은 기억합니다. 북으로 갔었던 그가 아이와 엄마를 데려가기 위해 왔었던 것처럼 그가 아이를 데리러 다시 오지 않을까 몇 번 주변을 맴돌긴 했지만 그 때마다 그 아이의 모습은 말도 표정도 없는 인형 같은 모습을 하곤 있더군요. 누군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반항도 없고 감정의 표현도 없고 마치 영혼이 죽은 사람 같았어요.”



나도 멍하니 창 밖을 봤다. 그의 웃음이 가면처럼 느껴진 이후로 남과 다른 그의 내면이 늘 가슴을 아프게 했었지만 오늘처럼 그가 안타까운 적은 없었다. 그의 몸에 난 수많은 상흔보다 더 깊은 그의 영혼의 상흔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치유되지 않은 채 아직도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예전에 들은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양반집 규수를 사랑한 어느 머슴의 이야기죠. 어느 날 규수가 몸종을 데리고 계곡에 놀러를 갔어요. 그런데 그 즐거움에 취해 있다 보니 실수로 그만 귀한 노리개가 깊은 물에 떨어진 겁니다. 그래서 몸종을 시켜 건져오라 했더니 그 몸종이 하는 말이 노리개가 제 목숨보다 귀합니까  그러더라네요. 규수가 생각하니 아무리 자신이 주인이라 해도 노리개가 사람 목숨보다 더 귀할 수는 없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한참을 물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하는데, 마침 나무하러 왔던 머슴이 그걸 보고는 서슴지 않고 물에 들어가서는 노리개를 건져왔죠. 그런데 이 머슴이 하는 모양을 보아하니 전혀 헤엄을 치지 못하더라는 거에요. 거의 죽을 뻔해서 건져와서는 아가씨에게 건넸는데 그 규수가 물었죠. 너는 목숨이 아깝지 않느냐  그랬더니 이 머슴이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을 한 겁니다. 어찌 목숨이 아깝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목숨이 아무리 아깝기로 연모하는 마음에 비할 수야 있겠습니까  다시 떨어진다 해도 건져오겠습니다. 하하…… 결국 두 사람은 야반도주를 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더군요.”



그가 나를 봤다.



“이제 선택은 두 사람에게 달렸어요. 부디 잘 선택해봐요. 그리고……”



그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



“내가 갖고 있던 자료는 신대리가 달라고 해서 다 주었어요. 그가 부탁하기에 내가 갖고 있던 자료들은 모두 삭제했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눈을 뜨지도 않았고,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동안 정들었던 곳이지만 이젠 떠나야 했다. 그가 사준 바지와 스웨터와 점퍼를 걸치고 그가 사준 나머지 모든 것을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그가 사준 등산화를 꺼내 신고 문 앞에 서서 다시 뒤를 돌아봤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고 누군가 그랬지. 새로운 만남을 위해 떠나는 이 이별이 그래도 못내 아쉬운 것은 수많은 밤을 보냈던 외롭고 쓸쓸했던 기억 때문이 아니라 그와의 첫 사랑의 아련한 추억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배낭을 들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밖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디려 할 때



“오랜만이야. 어디 가려고 ”

“애리…… 언니 ”



그녀였다. 그녀가 웃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총이 무섭게 나를 겨눈 채. 반사적으로 나는 문을 닫으며 했지만 그녀의 발이 문틈에 들어와 닫을 수 없었다. 배낭을 놓고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소파 뒤로 몸을 숨겼다. 그녀가 천천히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예의 잠기는 소리가 무섭게 들렸다.



“우리 그 동안 잘 지냈잖아  마지막까지 잘 지내면 좋을 것 같은데, 어때 ”

“무슨 소릴 하는 거에요 ”



나는 품에서 수현씨가 준 총을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소리 나지 않게 장전을 하며 안전장치를 풀었다.



“좋은 말로 할 때 나와 같이 가주면 좋겠어. 거칠게 다루지는 않을게. 내가 좀 필요한 것이 있거든. 그것만 얻으면 손대지 않고 놔줄 테니 조용히 가자고.”

“그래서 미희도 그렇게 만든 건가요 ”

“아, 그년  그년 그거 꽤나 독하던데  내가 극치의 쾌감을 여러 번 선사했는데도 입을 열지 않더라고. 왜, 유리도 한 번 맛보고 싶어  하긴 지난 번 생리만 안 했으면 맛보게 해줄 수 있었는데 말이지. 뭐, 이번에 제대로 선물하기로 하지. 호호호……”



한걸음씩 그녀가 다가서고 있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에요. 나는 가지 않을 테니까.”

“그럼 끌고라도 가야겠군. 니 남자친구는 지금쯤 그 미래 뭔지 하는 놈들과 이야기 하느라 바빠서 오지 못할 텐데 어쩌지 ”



수현씨가 왜 그들을 



“우린 너한테 관심 없어. 니 애비에게 볼 일이 있을 뿐이야. 그러니 걱정할 거 없어. 니 애비만 있으면 협상이고 자시고 다 필요 없거든. 자, 어서 나와. 나도 좀 바빠서 말이지.”

“미친 년!”

“뭐  이 년이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



그녀가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알이 소파 등받이를 지나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감정이 올라오는 그 때가 나의 기회일 터였다. 나는 소파 옆으로 몸을 굴리며 그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이, 이런…… 내가… 내가 너…… 따위에게……”



그녀의 몸이 서서히 주저 앉았다. 그녀의 배와 가슴에서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몸이 떨려왔다. 내가 사람을 죽이다니! 그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유리야! 유리야 ”



익숙한 목소리, 이사장이었다. 문을 열자 이사장과 이실장이 총을 들고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이실장이 주저앉은 그녀를 보고 서둘러 들어와 그녀를 살폈다. 그리고 의외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훌륭한 솜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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